의학과 만난 이공학자들…“첨단의료 리드할 ‘무기’ 만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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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의학과 만난 이공학자들…“첨단의료 리드할 ‘무기’ 만들죠”
입력 2023.08.11 11:33
VR기술·증강현실·첨단소재부터 의료장비까지
의료기기 실용화 위한 투자유치·특허등록·창업
“융합의학 특성에 맞춘 장기적 예산지원 절실”
융합의학기술원을 이끌어가는 사람들. 맨 앞이 김경환 원장, 그 바로 왼쪽이 나이랑 교수(융합기초), 김 원장 오른쪽은 공현중 융합의학과장.
그리고 뒤쪽의 왼쪽부터 김영곤 교수(의료인공지능), 임민혁 연구교수(의료빅데이터), 조민우 교수(생체계측), 한도현 교수(의생명과학),
김광수 교수(의료빅데이터), 이사람 교수(기술실용화), 방영봉 교수(로봇), 백창훈 연구교수(신경공학), 정지홍 교수(재료). [사진=서울대병원 융합의학기술원]
#서울대병원 융합의학기술원 10층 의료 XR(확장현실)스튜디오. 비뇨의학과 전공의들이 가상수술 시뮬레이터로 수술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시뮬레이터는 수술 경험이 부족한 전공의들의 수술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 융합의학과에서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서울대병원 기술 연계 플랫폼인 스파크(spark.snuhrnd.org)에는 서울대병원 교수들이 연구, 개발한 우수기술 19개와 교수들이 창업한 기업 8곳이 동영상과 함께 소개되어 있다. 기술 이전이나 투자 유치를 위해 융합의학과에서 개설한 플랫폼이다.
서울대병원 융합의학과가 개설한 온라인 기술 연계 플랫폼 ‘스파크’. 현재 우수기술 19개와 벤처기업 8개를 소개해 기술이전이나 투자유치를 돕고 있다. [이미지=스파크 홈페이지]
진료에 치중하던 대학병원이 달라지고 있다. 환자 맞춤형 의료 서비스를 개발하고 당장 돈이 되지 않는 기초연구에도 눈을 돌린다. 신기술 연구와 교육, 첨단 의료기기 개발, 사업화 추구도 활발하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 융합의학이 있다.
서울대병원이 국내 융합의학을 선도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은 2020년 융합의학과를 신설해 융합의학 육성과 인재 양성에 나섰다. 특히 주목되는 건 1개 과 개설에 그치지 않고 융합의학기술원(융의원)을 설립해, 그 안에 융합의학과를 둔 것이다. 서울대병원이 이처럼 ‘판’을 크게 벌인 이유는 무엇일까. 김경환 융합의학기술원장(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의 설명이다.
“서울대병원이 4차산업혁명 시대에 미래 의료를 선도하려면 국가연구 중심의 ‘4차병원’으로 도약해야 한다. 융의원은 특히 융합의학 연구와 융합의학 전문인력 양성을 목표로 설립되었다. 이러한 목표 달성을 위해 조직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병원장 직속으로 출범했다.”
융의원에게 부여된 임무는 ▶희귀·난치 질환과 의료 서비스의 난제 해결 ▶병원 내 의료기술 개발 및 지원 ▶첨단 융합의학 기초 연구와 실용화 기술 개발이 연계된 지능형 병원(Intelligent Hospital) 구축이다.
◇의대 출신 교수가 없는 이유=융의원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서울대병원 인근의 15층 빌딩 전층을 사용한다. 융합의학과 교수 연구실, 핵심의료기술 연구소, 의료XR스튜디오, 의료로봇 메카트로닉스 연구실, 디지털 병리 연구사업단, 실험실이 층층에 포진해 있다. 시제품 제작 지원실에는 3D프린터, 레이저절단기, 선반, 밀링 같은 공과대학에서 만나는 다양한 장비가 갖춰져 있다. 의료기기를 직접 제작한다.
융합의학과는 연구 분야가 의생명공학, 의생명과학, 데이터의학, 의료기술정책의학으로 나눠져 있다. 교수 9명이 있다. 교수당 융합의학연수생(전공의 레벨의 연구원) 2명에 학생 연구원을 최대 20명까지 두고 있다. 교수들은 융합의학 인재 양성을 위해, 융합의학 연수생뿐만 아니라 의과대학 대학원생에게도 융합의학을 지도한다.
흥미롭게도 융합의학과 교수들은 모두 비(非) 의과대학 출신이다. 산업공학, 생명의료공학, 유전공학, 기계공학 등 자연과학 혹은 공학을 전공했다. 임상 교수들의 경험과 의학 지식에 이공학을 ‘융합’해 시너지를 창출하기 위해서다.
의생명공학 분야는 로봇, 영상, 재료, 전기전자를 다룬다. 의생명과학 분야는 면역학, 생리학, 종양학 등 의료기반기술을 연구한다. 데이터의학 분야는 의료인공지능, 의료빅데이터를 관장한다. 의료기술정책 분야는 헬스케어 서비스와 기술 실용화(사업화)를 담당한다.
융합의학과의 주요 역할은 첨단의학 연구와 교육, 기술 실용화다. 환자를 진료하는 교수들은 진료가 우선이기 때문에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연구, 개발에 전념하기가 어렵다. 아이디어를 제품화 해서 시장에 내놓기까지는 특허 취득, 기술이전, 투자유치, 사업화 등 허들이 많다. 공현중 교수(융합의학과 과장)의 부연 설명이다.
“과거에는 의학전문가(의사)와 기술전문가(이공학자)가 따로 존재했지만 10여년 전부터는 의학과 이공학이 만나서 과제를 함께 수행했다. 그러나 과제를 마치면 제자리로 돌아갔기 때문에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실용화할 가능성이 낮았다. 융합의학과는 이공학자들을 모아서, 의사들이 원하는 ‘무기’를 만들고 이를 실용화해서 환자를 더 잘 볼 수 있게 돕고 의학적 난제를 해결하고 글로벌 의료산업을 리드하는 것이 핵심 역할이다. 의학전문가와 기술전문가가 만나면서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 가능성도 높아졌다.”
◇의료 메타버스 기술 개발 활기=융합의학 연구 성과가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의료 메타버스 기술이 대표적이다. VR(가상현실) 기술을 이용한 갑상선, 전립선비대증, 충수 절제수술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 전공의의 수술 실력 향상을 돕고 있다. 수술을 앞둔 어린이 환자의 불안감 완화를 돕는 VR기기는 개발 완료 단계로, 올 하반기나 내년 초에 상용화될 예정이다. 어린이가 VR공간에 들어가면 어린이병원 공식 캐릭터가 아바타로 등장해 긴장을 덜어주는 방식이다. 수술 중인 의사가 대기실에서 기다리는 환자 보호자와 실시간 소통할 수 있는 ‘AR(증강현실) 화상회의 도구’도 개발 중이다.
의생명공학 분야에서는 주목할만한 소재 개발을 이뤄냈다. 어린이의 성장판이 손상되면 후유증으로 손상 부위에 골교(뼈 조직이 딱딱해지는 현상)가 생성되어 성장이 정지되는데, 골교 형성을 막고 연골 재생을 돕는 하이드로젤 소재를 개발했다. 또, 상처 치료에 사용하는 습윤 드레싱은 접착력이 약해 효과 발휘에 한계가 있었는데, 피부 접착력을 높이고 조직 재생을 돕는 소재를 개발해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의생명과학 분야는 임상 교수들과 중복되는 부분이 많지만, 최신 생물학 연구기법이나 면역항암제, 유전자 정보 연구는 임상 교수가 직접 실험을 하기에는 기술과 장비 면에서 한계가 있기 때문에 융합의학과에서 집중 연구하고 있다.
◇우리 병원 기술에 투자하세요=기술 실용화도 핵심 미션이다. 첨단 의료기술을 제품화 하면 의료산업 발전은 물론 병원 수익 증대에도 기여할 수 있어서다.
사업화 성공 사례는 아직 없다. 기술 실용화를 담당하는 이사람 융합의학과 교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사람 서울대병원 융합의학과 교수. [사진=성유숙 기자]
“3년이라는 시간은 신기술을 개발해 제품화까지 하기에는 너무 짧다. 그러나 임상 교수들이 개발하고 융합의학과가 직간접으로 관리하는 우수기술이 27개나 되기 때문에 사업화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본다.”
융합의학과는 개발된 기술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특허 등록, 홍보, 투자유치를 지원한다. 이를 위해 온라인 기술연계 플랫폼 SPARK(스파크)를 최근 개설했다. 스파크에는 특허 등록, 출원 중인 우수기술 19개에 대한 기술정보가 소개되어 있다. 기술을 연구, 개발한 교수들이 10~20분 분량의 동영상에 직접 출연해 핵심기술을 설명한다. 위암 진단을 위한 바이오마커 개발(분당서울대병원 소화기내과 김나영 교수) 등이다. 산부인과 정연훈 교수는 컨베이어 작동 원리를 모방한 ‘침상 간 환자 이송장치’ 등 의료장비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임상 교수들이 개인적으로 창업한 벤처·스타트업 기업 8곳을 소개하는 코너도 개설했다. 인공지능을 이용한 심전도분석 서비스를 제공하는 ‘알피’(대표 분당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김중희 교수) 등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이다.
융합의학과는 지난 7월에는, 연구자들과 함께 제주도에서 개최된 제약·바이오 박람회 ‘제21회 인터비즈 바이오 파트너링&포럼’에 참가해 신기술 6가지를 소개하기도 했다. 이사람 교수는 “보건의료 분야는 융합이 매우 중요하다”라며 “의사, 연구자, 기업이 꾸준히 만나서 융합하면 엄청난 결과물이 창출될 것”이라고 말했다.
융합의학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종사자, 병원, 정부의 ‘융합’도 중요하다. 김경환 원장은 그 과제를 다음과 같이 함축했다. “융합의학은 융합에 기반을 둔 응용 학문이다. 해당 분야의 인력은 확고한 전문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상대 분야와 협력하여 환자를 위한 미래의료 기술 개발을 최우선 순위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병원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 연구, 진료 역량, 빅데이터, 협력 네트워크 역량을 활용하여 미래 혁신 의료기술을 개발하고 실용화할 수 있도록 인력, 조직, 예산 등을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융합의학 발전을 위한 행정적·법적 지원 기반 마련과 함께 장기적인 계획과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특히 하나의 부처에서 담당하기 어려운 융합의학이라는 특성에 맞춰 유관 부처(기획재정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의 일관성 있는 지원과 제도 수립이 필수적이라 생각된다.”
출처 : 더메디컬(https://www.themedical.kr)
김공필 의학저널리스트
기사본문 : https://www.themedical.kr/news/articleView.html?idxno=1053